[한국인권신문=강재현 기자]
신고 기간을 놓쳐 제주4·3사건 희생자나 유족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이들에게 다시 신고할 기회가 열린다. 정부가 내년 2월부터 6개월 동안 제주4·3 희생자와 유족의 추가신고를 받는다. 보상금 신청 기한도 3년 연장해 2029년 말까지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행정안전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을 9월 1일부터 시행한다고 31일 밝혔다.
이번 시행령 개정의 핵심은 이미 종료된 희생자·유족 신고 절차를 다시 여는 것이다.
추가신고 기간은 2027년 2월 1일부터 7월 31일까지다.
정부는 앞서 2023년 1월부터 6월까지 제8차 제주4·3 희생자·유족 추가신고를 진행했다.
하지만 당시 신고기간을 놓쳐 신청하지 못한 희생자와 유족에게 다시 신고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4·3 유족회의 건의가 이어졌다.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약 4년 만에 추가신고 창구가 다시 열리게 됐다.
행안부는 지난 6월 10일부터 7월 20일까지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해 국민과 관계기관의 의견을 수렴했다. 개정안은 지난 8월 18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현재까지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제주4·3 희생자는 1만5286명이다. 유족으로 인정된 인원은 12만8295명에 달한다.
추가신고와 함께 희생자와 유족의 실질적인 권리구제를 위한 각종 신청 기한도 연장된다.
제주4·3사건으로 가족관계등록부가 작성되지 않았거나 실제 가족관계와 다르게 작성된 경우 이를 새로 작성하거나 바로잡을 수 있는 신청 기간을 늘린다.
혼인·입양 신고 신청 기간 역시 당초 2026년 8월 31일까지였지만 2028년 8월 31일까지 2년 연장된다.
제주4·3 당시에는 사회적 혼란과 가족의 사망·실종 등으로 실제 가족관계가 공식 기록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특히 4·3사건 이후 오랜 기간 희생자와의 관계를 드러내기 어려웠던 사회적 분위기까지 겹치면서 가족관계등록부가 실제 가족관계와 다르게 남아 있는 경우도 있었다.
정부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가족관계등록부 작성·정정뿐 아니라 사실혼 관계나 사실상 양친자 관계 등에 대해서도 일정한 절차를 거쳐 법적인 가족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특례를 마련해왔다.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해당 절차를 밟을 수 있는 시간도 2년 더 확보된다.
희생자에게 지급하는 보상금 신청 기한은 더 크게 늘어난다.
당초 올해 12월 31일까지였던 보상금 신청 기간을 2029년 12월 31일까지 3년 연장한다.
이에 따라 내년 추가신고를 거쳐 새롭게 희생자 또는 유족으로 결정되는 경우에도 관련 절차를 거쳐 보상금을 신청할 수 있게 된다.
추가신고를 받으면서 기존 보상금 신청 기한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새롭게 인정되는 희생자와 유족이 보상 절차를 밟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제주4·3 희생자에 대한 국가 보상은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정부는 제주4·3특별법에 따라 희생자의 사망·행방불명·후유장애·수형 여부 등에 대한 심사를 거쳐 보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번 시행령 개정은 단순히 신고기간을 늘리는 것을 넘어 아직 국가의 공식적인 희생자·유족 인정 절차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을 추가로 찾아내 명예회복과 보상으로 연결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제주4·3사건의 아픔을 기억하고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은 국가의 중요한 책무라고 밝혔다.
이어 한 사람이라도 더 국가의 공식적인 인정과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다시 신고의 문을 열었다며 제주4·3사건의 상처 치유와 완전한 명예회복을 위해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제주4·3사건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무력충돌과 1954년 9월 21일까지 이어진 진압 과정에서 제주 주민들이 희생된 사건이다.
2000년 제주4·3특별법 제정을 계기로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과 희생자·유족 명예회복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후 희생자와 유족 결정, 국가 차원의 공식 사과와 추념, 재심을 통한 명예회복, 보상금 지급 등 후속 조치가 이어져 왔다.
하지만 사건 발생 이후 70년 넘는 시간이 흐른 만큼 희생자와 유족의 고령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신고하지 못한 희생자와 유족을 추가로 확인하고 왜곡된 가족관계를 바로잡는 작업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요구가 계속돼왔다.
정부가 내년 다시 신고 창구를 여는 것도 아직 제도권 밖에 남아 있는 희생자와 유족을 찾아 국가의 공식 인정과 보상으로 연결하기 위한 것이다.
내년 2월부터 시작되는 6개월간의 추가신고를 통해 새롭게 인정되는 희생자와 유족이 얼마나 늘어날지 주목된다.
강재현기자 yunjohara@naver.com <저작권자 ⓒ 한국인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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