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권신문=경기·인천 취재본부 박천웅 기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국내에 수백조원 규모의 반도체 생산시설 투자를 추진하면서 전력에 이어 ‘물’ 확보가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경기 용인과 호남에 추진되는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에 필요한 산업용수만 하루 215만t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 다목적댐의 물만으로 대규모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 만큼 발전용 댐과 농업용 저수지, 하수 재이용수까지 활용하는 국가 차원의 용수 공급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회물포럼 제36차 토론회에서는 ‘3대 메가프로젝트 반도체 산업용수 공급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반도체 산업 확대에 따른 물 공급 문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정부가 추진하는 대규모 반도체 프로젝트가 계획대로 가동되기 위해서는 공장과 전력망뿐 아니라 안정적인 산업용수 확보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반도체 공장은 대표적인 물 다소비 산업시설이다. 웨이퍼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고순도의 물을 대량으로 사용한다. 생산시설이 대형화되고 첨단 공정이 확대될수록 안정적인 용수 공급의 중요성도 커진다.
김호은 기후에너지환경부 물이용정책관은 이날 반도체 산업용수 확보가 단순한 기업 지원 차원을 넘어 국가 산업 경쟁력과 직결되는 물 정책의 핵심 과제라는 취지로 강조했다.
가장 많은 물이 필요한 곳은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기지 조성이 추진되고 있는 용인이다.
정부가 예상하는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과 일반산단의 전체 용수 수요는 하루 약 150만t이다.
이 가운데 하루 107만t은 통합용수공급사업을 통해 추가 확보한다. 소양강댐과 충주댐 등 다목적댐뿐 아니라 발전용 댐인 화천댐과 하수 재이용수를 함께 활용하는 방식이다.
공급 일정도 앞당기고 있다.
정부는 하루 31만t을 공급하는 통합용수공급사업 1단계 가동 시점을 당초 2031년 1월에서 2029년 5월로 1년 8개월 앞당겼다.
하루 76만t을 추가 공급하는 2단계 사업은 국가수도기본계획 반영 등의 절차를 거쳐 올해 하반기 설계에 들어가고 2034년 7월부터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용인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대규모 생산기지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생산시설이 순차적으로 가동되면 현재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전력과 용수 수요가 늘어날 전망이다.
호남에 추진되는 반도체 생산시설도 새로운 용수 수요처로 떠오르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호남 반도체 산업단지에 필요한 용수가 하루 약 65만t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용인 150만t과 호남 65만t을 합치면 하루 215만t이다.
배영대 K-water 수자원기획처장은 광주시가 하루 사용하는 물이 50만t에 미치지 않는 수준이라는 점을 언급하며 호남 반도체 산업단지 하나에서 광역시 한 곳을 넘어서는 규모의 용수가 필요해지는 만큼 국가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호남지역의 여러 수원을 연계해 필요한 물을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동복댐에서 하루 30만t, 주암·장흥댐에서 15만t, 보성강댐에서 10만t, 나주댐에서 10만t을 각각 확보해 하루 65만t의 공급능력을 갖추는 구상이다.
광주 제1하수처리장에서 하루 30만t 규모의 재이용수를 추가로 확보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에 올라 있다.
문제는 반도체 산업이 확대될수록 기존 생활·농업·발전용 물 수요와 산업용수 수요를 함께 조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가뭄이 장기화할 경우 생활용수와 산업용수 사이에서 물 배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특정 댐 하나에 의존하기보다 여러 수원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공급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수처리수를 정화해 반도체 산업에 다시 활용하는 방안이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미 충북 청주에서는 하수 재이용수가 실제 반도체 생산시설의 공업용수로 공급되고 있다.
청주 하수처리수 재이용시설은 하루 3만5000t의 공업용수를 생산할 수 있으며 이 가운데 하루 2만9400t을 SK하이닉스 청주사업장에 공급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청주를 차세대 메모리 생산 거점으로 확대하기 위해 총 100조원 규모의 추가 투자도 추진하고 있다.
회사가 지난 7월 발표한 계획에 따르면 신규 낸드 생산시설인 M17에 80조원을 투자하고 첨단 패키징 시설인 P&T7 등에 20조원을 투입한다.
SK하이닉스가 청주를 대규모 투자지역으로 선택한 배경에도 이미 상당 부분 구축된 부지와 전력·용수 인프라가 있었다.
반도체 투자 경쟁에서 공장 건설에 필요한 토지만큼이나 전력과 물을 얼마나 빨리 확보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입지 조건이 되고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새로운 수원을 확보하는 것과 동시에 반도체 기업도 공정에서 사용하는 물의 재활용률을 높이는 데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성준 건국대 교수는 이날 토론회에서 하수처리수를 반도체 공정에 사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추가 정화하는 과정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실제 물을 사용하는 기업들의 역할도 필요하다는 취지로 강조했다.
향후 반도체 산업용수 정책의 핵심은 ‘얼마나 많은 물을 확보하느냐’에서 ‘어떻게 안정적으로 순환시켜 사용하느냐’로 확대될 전망이다.
기후변화로 가뭄과 집중호우의 변동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대규모 산업단지가 기존 댐의 물에만 의존할 경우 지역 생활용수와 농업용수 등 다른 물 수요와 충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와 물 관련 기관들도 다목적댐뿐 아니라 발전용 댐, 농업용 저수지, 하수 재이용수 등 기존에 서로 다른 목적으로 관리해온 수자원을 연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수백조원의 반도체 투자가 실제 생산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공장을 지을 부지와 전력망만 확보해서는 부족하다. 하루 수백만t의 물을 수십 년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인프라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경쟁이 생산능력 확대 경쟁으로 이어지면서 ‘전력 확보’에 집중됐던 국내 반도체 인프라 논의가 이제는 ‘물 확보’까지 확장되고 있다.
박천웅 기자 pcw8728900@naver.com <저작권자 ⓒ 한국인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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