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노무현 대통령에게 배우는 사람을 움직이는 글쓰기 비법

강원국 씨와 함께한 세 번째 ‘동심포럼’

한국인권신문 | 기사입력 2015/03/02 [00:12]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에게 배우는 사람을 움직이는 글쓰기 비법

강원국 씨와 함께한 세 번째 ‘동심포럼’

한국인권신문 | 입력 : 2015/03/02 [00:12]

 

 

 

[한국인권신문] ‘남양주를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어가고자 하는 시민들의 자발적·자율적 모임’이 있다. 2014년 하반기부터 창립을 추진해 금년 초부터 준비위원회로 탈바꿈한 ‘동심포럼(창립준비위원장 이영주, 이하 동심)’이 그것이다.

 

작년에 동심은 외부 저명인사를 초빙해 화도와 평내에서 두 차례 강연회를 가졌다. 금년도 첫 번째(총 세 번째) 행사가 지난 26일(목) 와부읍 주민자치센터 4층 대강당에서 있었다. 당일 행사장은 초등학생부터 70대 할아버지까지 남녀노소 200여 명의 시민들로 만원을 이루었다.

 

그날 강연자로 초빙된 연사는 글쓰기 달인, 메디치미디어 편집주간 강원국 씨였다. ‘회장님의 글쓰기-상사의 마음을 사로잡는 90가지 계책(강원국, 메디치미디어, 2014)’과 ‘대통령의 글쓰기-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에게 배우는 사람을 움직이는 글쓰기 비법(강원국, 메디치미디어, 2014)’의 저자이기도 한 강 씨만의 글쓰기 노하우를 듣기 위해 인근 서울에서도 귀한 분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강 씨의 강연에 앞서 저녁 6시 50분부터 ‘어우러기 오카리나 앙상블(팀장 한예라 동심 운영위원) 오카리나 합주가 있었다. 그리고 강 씨와 김한정 씨(연세대 객원교수)의 대담 직전 덕소중학교 3학년 김호준 학생이 가야금을 구성지게 연주했다. 한 팀장 외 4인은 ‘아리오’, ‘향수’, ‘La Paloma', 'Perhaps Love', 'Sing Sing Sing' 이렇게 다섯 곡을 선보였고, 김 군은 ‘김죽파류 가야금 짧은 산조’를 뜯었다. 

 



강 씨만의 글쓰기 노하우와 대통령 연설문 작성 과정의 숨은 얘기를 들었다. 

 

강 씨 자신은 대학 다닐 때까지 글을 써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글은 그 사람의 생각자체라고 얘기했다. 더불어 간디가 했던 ‘내 삶이 나의 메시지다’란 말의 의미는 곧 ‘글은 그 사람이 살아온 길’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매일 아침마다 한 가지씩 그날의 주제를 생각해보는 습관을 갖기를 권했다. 즉, 자기 생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앞으로는 ‘말’과 ‘글’이 중요해지는 시대가 올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강 씨가 권하는 글쓰기를 잘하는 비법은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나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자료를 잘 요약하면 가능하다고 했다. 책, 인터넷, 자기 머리 등에 자료가 있다는 것이었다. 요약을 못하는 이유는 머릿속에 ‘틀’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빵을 예로 들었다. ‘빵틀(빵 모양의 주물)’이 틀이고 밀가루, 앙금 등이 ‘자료’이며 빵이 ‘글’이라면서.

 

강 씨로부터 두 전직 대통령(김대중, 노무현)의 연설문 작성 과정에서 있었던 일화를 들을 수 있었다.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 연설문 쓰기를 담당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청와대로 갔다고 했다. 청와대가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을 때였는데 첫날부터 연설문 두 개를 쓰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대학에서 학생운동도 전혀 해보지 않았던 강 씨는 김 대통령이 직접 집필한 책 8권을 독파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10일 동안 책 두 권 분량의 김 대통령 어록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것은 800여 개의 키워드로 구성돼 있다고 했다. 그 이후 연설문을 쓰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했다. 거기에는 김 대통령의 ‘생각’이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국의 ‘9·11 테러’ 때 사례를 예로 들었다. 당시 김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 지시를 받고 급박한 순간 썼던 글이었지만 괜찮았다고 했다. 그 이전에 만들어 놓았던 어록에서 ‘테러’라는 키워드를 검색했고, 덕분에 오래전 김 대통령이 ‘옥중서신’에서 언급했던 테러에 대한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김 대통령의 생각대로 쉽게 연설문을 쓸 수 있었다고 했다. 이처럼 자기 어록이 있으면 모든 글을 쉽게 쓸 수 있다고 했다. 자기 어록을 만드는 것은 자기 생각을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하면서.

 

노무현 대통령 때 있었던 재미있는 얘기 하나를 들려줬다. 대통령의 글쓰기를 하면서 두 가지 병을 달고 살았다고 했다.

 

하나는 ‘과민성 대장염’이고 다른 하나는 ‘무서움증’이었다고 했다. 대통령 앞에만 가면 갑자기 배가 아팠다는 것이었다. 노 대통령 말을 듣다가 두 번 화장실에 간 적이 있다고 했다. 화장실에 다녀오면 처음부터 다시 얘기를 시작했다고 했다. 남북정상회담 때는 밥도 안 먹고 관장을 하기도 했다는 것이었다. 돌아오는 순간까지 밥을 못 먹었다고 했다. 대국민 성명서를 작성해야 했기 때문에.

 

다른 하나 무서움증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 본관 천장이 높아 밤이 되면 무서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건물 내 경호원 외 근무자가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못 쓰면 어쩌지?’라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술을 마셨다는 것이었다.

 

한편 강 씨는 글 쓰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했다. 어렵게 느끼니까 못 쓰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두 대통령으로부터 배운 글쓰기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첫째, ‘독서’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라고 했다. 두 대통령은 독서광이라고 했다. 남의 생각을 빌어 나의 생각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노 대통령은 독서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저자 생각을 비교한다고 했다. 유명인 저자 생각과 일치할 때면 사무실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면서 기뻐했다는 것이었다.

 

둘째, ‘토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얘기하면서 생각이 만들어지고, 그 생각이 발전한다고 했다. 교실에서 떠드는 것도 생각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청소년의 독서량은 전 세계 1등인데 반해 쓰는 분량은 전 세계 꼴찌라는 것이었다.

 

셋째, ‘학습’하라고 했다. 호기심이 많을수록 질문을 많이 한다고 했다. 두 대통령은 배움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고 했다. 특히 노 대통령은 식사 때도 누군가를 불러 함께 밥을 먹으면서 현안에 대해 공부했다고 하였다. 청와대 뒷산을 산행할 때 계속 물었다고 했다. 어설프게 알고 있는 것은 아예 대답하지 않았다고 했다. 끝까지 묻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어느 식물학자를 불러 산행코스에 산재한 모든 식물에 대해 미리 공부를 하게 한 후 동행했다는 것이었다. 해외순방 중 비행기 안에서도 질문했다고 하였다.

 

넷째, ‘관찰’하라고 했다. 대통령은 유심히 보았다는 것이었다. 노 대통령은 YTN 자막을 보며 지시하고 물어보고 하면서 어느 것 하나 그냥 넘기지 않았다고 했다. 김 대통령은 신문을 보다가 미담 사례를 발견하면 편지를 보내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관찰, 관심 차원을 넘어 ‘공감’해야만 그렇게 할 수 있다고도 했다. 

 

다섯째, ‘메모’하라고 했다. 두 대통령은 메모광이라고 했다. 김 대통령은 국정노트(메모)가 26 ~ 27권이나 된다고 했다. 얼마나 꼼꼼히 기록하는지 회의 때 찾아서 어느 날 강우량 같은 수치까지 정확히 지적한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 전용 메모지를 사용했다고 하였다, 하루에 한 장을 사용하는데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꺼내 본다고 했다. 이렇게 두 대통령은 메모가 습관화됐다고 했다.

 

강 씨는 이 지점에서 폭소가 터지도록 재미있는 자기 얘기를 꺼냈다.

 

어느 휴일 집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을 때 김 대통령이 강 씨에게 전화를 직접 했다고 하였다. 그때는 메모지를 준비하지 못한 상태였기에 전화를 받으면서 대통령 말을 다 외우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얘기가 길어지자 대통령 말을 도저히 암기할 수 없을 것 같아 통화하면서 그 상태로 거실을 향해 엉금엉금 기어간 적이 있었다고 했다. 메모지를 찾아서.

 

 

이어서 대통령의 글쓰기에 필요한 것을 이야기했다.

 

우선 몸이 튼튼해야 한다고 했다. 두 대통령은 엄청나게 성실하다고 했다. 연설문을 준비하는데 시간을 최대한 투자한다고 했다. 어떤 때는 한 달 동안 준비하기도 했다는 것이었다. 연설문에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을 흔히 ‘애드리브’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사이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맷집’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김 대통령으로부터는 두 번 칭찬을 받았고, 노 대통령으로부터는 칭찬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김 대통령은 남을 통해 칭찬했다고 하였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고치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했다. 단어 한 개를 고치면 100점, 단락 하나를 고치면 80점으로 생각했다는 것이었다. 한 페이지를 x하고 뒷장에 쓴 경우도 있다는 것이었다. 연설문이 진짜 마음에 안 들었을 경우 종이가 안 내려왔다고 했다. 그 대신 다른 사람을 통해 녹음테이프를 보내는데 연설 시간과 일치할 만큼 정확했다고 하였다. 이런 경우 ‘폭탄 맞았다’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랬던 적이 두 번 있었다고 했다.   

 

더불어 말귀를 알아들어야 한다고 했다. 쉽지 않다고 했다. 100% 완벽히 얘기해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24시간 대통령 생각에 빠져 들어가야 대통령 생각을 알게 된다는 것이었다.

 

한편 강 씨는 글을 잘 쓰려면 독자의 생각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이를 위해 시간을 투자해 독서하고 자신감을 갖고 쓰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글쓰기에는 독서가 필요치 않다고 했다. 대통령의 빙의가 돼 대통령의 생각을 써야 하니까.

 

강연을 마무리하면서 강 씨는 두 대통령의 리더십은 ‘성실’과 ‘배려’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 자신을 중심에 두지 않았다고 했다. 그 자리에 ‘국민’과 ‘역사’를 놓았다고 했다.

 

이어진 대담에서 김한정 교수는 먼저 강 씨에게 “두 대통령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다.

 

이에 강 씨는 김 대통령은 역사를 생각하고 노 대통령은 청중을 생각한다고 답했다. 더불어 김 대통령은 국민이 듣고 싶은 얘기를 원고를 보면서 하고, 노 대통령은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원고를 보지 않은 채 말한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국민과의 괴리감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강 씨는 김 교수가 최초로 ‘말씀자료’를 만들었던 장본인이라고 했다. 그러자 김 교수는 1988년 25세 때 김대중 총재(당시 야당) 비서로 들어가 처음 6개월 동안은 신문 스크랩만 했다고 하였다. 그 후부터 연설문 초고 작업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강 씨는 대통령을 내가 보좌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했다. 내가 대통령으로부터 배운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노 대통령은 남의 말을 인용하지 못하게 했다고 하였다. 이에 반해 김 대통령은 남의 말을 잘 활용했다고 하였다.

 

플로어에서 두 사람이 질문자로 나섰다. 먼저 질문은 김 교수가 답했고 두 번째 질문은 강 씨가 응답했다.

 

김 교수는 “김 대통령은 세월이 흘러야 평가할 수 있다. 온갖 모욕, 박해를 당했다. 빨갱이, 욕심쟁이, 거짓말쟁이 등. 정말 노력하는 분이었다. 추종자나 비서들에게 늘 교수처럼 강의했다. 항상 정치인은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가지라고 했다. 이 말은 곧 균형감각을 가지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인내심을 요구했다.”라고 하면서 정치를 ‘갈등치유사업’이라고 했다. 진흙탕 속에서 연꽃을 피우게 하는 사업이라고 하면서.

 

강 씨는 “두 분은 소수를 대표했기에 소통하는 리더십이 필요했고 요구됐다. 노무현 대통령이 생존해 계신다면 끝까지 모시고 싶다. 노 대통령은 김 대통령을 위대한 사상가로 흠모했고 부러워했다. 퇴임 후 그렇게 되기 위해 공부하면서 저술활동을 하려고 했다. 만약 살아계셔서 그렇게 한다면 뭔가 대단한 것이 나올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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