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했으니 사기인가” 사업 실패의 형사화 논란

박천웅 기자 | 입력 : 2026/05/14 [16:39]

▲ 한국인권신문DB     

 

[한국인권신문=경기·인천 취재본부 박천웅 기자]

 

한때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사회”는 혁신의 조건처럼 이야기됐다. 그러나 지금 한국 사회의 분위기는 정반대로 흐르고 있다. 사업이 무너지면 손실 책임을 넘어 형사 책임까지 따라붙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 실패는 곧 사기 의혹이 되고, 경영 악화는 고의적 기망의 증거처럼 해석된다. 문제는 이 흐름이 단순한 몇몇 사건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자칫하면 대한민국은 실패 자체를 범죄처럼 취급하는 사회로 이동할 수 있다.

 

최근 투자 유치와 관련한 형사 사건에서도 논란의 핵심은 같았다. 사업은 실패했고 투자금은 사라졌다. 법원은 그 결과를 근거로 사기 혐의를 인정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매우 위험한 질문이 숨어 있다. 정말 결과만으로 처음의 의도까지 판단할 수 있는가.

 

사기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를 속이려는 ‘처음의 의도’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 의도를 직접 증명하기 어렵다. 결국 수사기관과 법원은 사업 실패 이후 남겨진 정황을 통해 과거의 의도를 거꾸로 추론한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실패 규모가 크고 피해자가 많을수록 사회적 분위기는 빠르게 한 방향으로 쏠린다. “결국 망했으니 애초부터 속인 것 아니냐”는 논리가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하지만 실제 사업 세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특히 콘텐츠·플랫폼·교육·문화 산업처럼 미래 가능성에 투자하는 영역은 애초에 성공보다 실패 확률이 훨씬 높다. 투자자는 높은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높은 수익 가능성을 기대한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는 이유만으로 형사 책임 가능성이 커진다면, 결국 살아남는 것은 가장 안전하고 평범한 사업뿐이다.

 

더 큰 문제는 기준의 불확실성이다. 어디까지가 과장된 전망이고 어디부터가 범죄인지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업 계획은 원래 미래를 전제로 한다. 시장 상황, 경기 침체, 외부 변수 하나만으로도 수치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코로나19는 수많은 정상 기업조차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그런데 실패 이후의 결과만 남겨놓고 당시의 모든 판단을 범죄로 재구성하기 시작하면, 기업 활동 자체는 극도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물론 투자자 보호는 반드시 필요하다. 허위 자료를 만들고 투자금을 개인적으로 빼돌리는 행위까지 사업 실패로 포장되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진짜 사기’와 ‘실패한 도전’을 구별하는 기준이다. 그 기준이 흔들리면 피해는 단지 기업인에게만 돌아가지 않는다. 투자 시장 전체가 얼어붙고, 새로운 시도는 사라지며, 결국 경제 전체의 활력도 약해진다.

 

특히 한국 사회는 실패를 유난히 결과 중심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성공하면 혁신가가 되고, 실패하면 의심받는다. 하지만 혁신 산업 대부분은 수많은 실패 위에서 겨우 몇 개의 성공이 살아남는 구조다. 실패 자체를 형사 리스크로 연결하기 시작하면, 결국 아무도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게 된다.

 

법은 실패를 처벌하는 장치가 아니다. 법이 처벌해야 하는 것은 처음부터 속이려 했던 의도와 행위다. 그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순간, 형사 책임은 정의의 기준이 아니라 결과에 대한 감정적 응징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만을 묻는 분위기가 아니다. 실패와 범죄를 어떻게 구별할 것인지에 대한 훨씬 더 냉정하고 정교한 기준이다. 그 기준이 흔들리는 사회에서는 투자자도, 기업가도, 결국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

 

사업은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실패한 사람 모두를 범죄자로 보기 시작하는 순간,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도전하는 사람들이다.

 

박천웅 기자 pcw87289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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