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 칼럼] 거스를 수 없는 인연(因緣)

한국인권신문 | 입력 : 2024/08/19 [14:27]

▲ 소설가 전정희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은 참으로 오묘하고 신비롭다. 인연이란 말은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지만, 그 속에 담긴 깊이와 의미를 곱씹어보면 어느새 마음이 따뜻해진다.

 

강원도의 고요한 산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나는 인연의 소중함을 일찍이 깨달았다. 마을 사람들과의 정, 자연과의 교감, 친구들과의 추억이 내게 일찌감치 인연의 의미를 일깨워주었다.

 

인연은 마치 계절의 변화와도 같다. 봄날의 싱그러운 바람처럼 우리 곁에 다가오고, 여름날의 강렬한 햇살처럼 뜨거운 순간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때로는 가을의 낙엽처럼 조용히 사라지기도 하고, 겨울의 눈처럼 차가운 이별을 맞이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연은 언제나 우리 마음속에 소중한 추억으로 남는다.

 

어느 날, 서울의 한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와의 인연이 생각난다. 그때 나는 삶에 지쳐 있었고, 그 친구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며 위로를 주고받았다. 그 순간, 나는 인연이란 단순한 만남 그 이상의 것임을 깨달았다.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함께 웃고 울 수 있는 관계가 바로 인연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연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도 한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만난 사람과의 짧은 대화도, 오래된 친구와의 깊은 우정도 모두 인연의 결과다. 우리는 이러한 인연을 통해 성장하고, 배우고, 사랑을 느낀다. 인연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메마를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삶의 원동력이다.

 

얼마 전에는 오래된 친구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몇 년간 연락이 끊겼던 그 친구는 여전히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쌓였던 이야기들을 나누며 다시금 가까워졌다. 이러한 재회의 순간들은 인연의 힘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해준다. 안타깝게 헤어져도 인연은 언젠가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이어진다.

 

가족이라는 인연도 빼놓을 수 없다.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형제와 자매 사이의 인연은 삶의 뿌리와도 같다. 부모님이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 가족과 함께 웃고 울던 추억들은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이다. 가족은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며, 언제나 따뜻한 안식처가 되어준다.

 

아스팔트도 녹일 듯 기승을 부리던 한여름의 더위도 말복이 지나면서 뒷걸음질 치는 것 같다. 이맘때쯤 내 고향 강원도에는 키가 훌쩍 큰 벼가 알알이 익어가고, 하늘에는 곧 고추잠자리가 빨갛게 수를 놓으며 날아다닐 것이다. 거기에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정겨운 그 풍경이 나는 가끔 사무치게 그립다.

 

어떤 인연으로 내가 강원도에서 인천으로 오게 되었는지 그 깊은 인연의 근원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인연의 끈은 확실히 나의 삶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실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실은 우리의 삶을 거미줄처럼 연결하고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 때때로 실은 엉키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하지만 결국 더욱 단단한 인연으로 우리를 묶어준다.

 

우리의 인연은 때로는 운명처럼 다가오기도 하고, 스스로 만들어가기도 한다. 가끔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인연이 우리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몇 년 전 한 출판사에서 만난 한 지인과의 인연은 나에게 새로운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그녀는 나에게 인생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주었고, 그 덕분에 나는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이렇듯 인연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찾아오기도 하고, 우리의 삶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주기도 한다. 우리는 이러한 인연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며, 우리의 삶은 점점 더 풍요로워진다.

 

우리는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감사해야 한다. 때로는 작은 친절과 관심이 새로운 인연의 시작이 된다. 오늘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네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보자. 그렇게 만들어진 인연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인연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좋은 인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더 깊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으며, 이러한 관계는 우리의 삶에 큰 힘이 된다.

 

나는 오늘도 인천의 서재에서 그동안 나를 스쳤던 인연을 생각하며 글을 쓴다. 때로는 좋은 인연을 만나기도 했고 때로는 악연이 된 사람들도 있다. 처음부터 악연이 될 미래를 알았더라면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 그 끝을 모르기 때문에 인생의 묘미가 있는 것 아닐까?

 

결국에는 인연도 악연도 내가 피할 수 없는 거대한 운명의 굴레인 것 같다. 저녁 무렵 산책을 다녀왔다. 열대야가 지속되어 연일 폭염경보가 내리던 지난주와 달리 확실히 바람의 온도가 달라진 듯하다.

 

거스를 수 없는 계절의 변화처럼 소중한 인연은 끝끝내 놓치지 않고 싶고 악연일랑 얼른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빨리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왔으면 좋겠다. 

 

글 전정희(소설가)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이동
메인사진
포토뉴스
[전정희 칼럼] 거스를 수 없는 인연(因緣)
이전
1/1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