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명옥 사랑학 교실] 동성애(3), 한국의 동성애 역사

한국인권신문 | 입력 : 2013/09/01 [14:08]

 
 
[한국인권신문=안명옥 교수]
<삼국유사> 제2권 ‘기이편’에 실려있는 혜공왕에 관한 기록을 보면, 원래 여성으로 태어날 운명인데 남성으로 태어나 여자같이 행동하고 여자의 놀이를 즐기었다고 합니다. 또한, 원성대왕 시절 불도를 닦던 어린 중인 묘정(妙正)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 원성대왕이 묘정을 사랑하여 자신의 곁을 떠나지 못하게 했으며, 묘정은 신라의 관리뿐만 아니라 당나라의 황제에게서도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고려사> 세가권 제44편에 실린 고려시대 공민왕에 관한 내용을 보면, 부인 노국공주가 죽자 아름다운 소년을 가까이해서 궁중의 기강을 문란하게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기록은 세종18년 이조실록에 세종의 두 번째 며느리인 봉씨에 관한 이야기를 들수 있습니다. 봉씨는 소쌍이라는 자신의 시녀를 사랑하면서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는 기록과 함께 그 당시 궁녀들 사이에 동성애 관계가 빈번하였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자료들이 주로 왕가를 비롯한 상류층에 치우쳐 있어서 그 당시 대다수 서민들의 삶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으나, 판소리나 구비문학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서민층에서도 동성애가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가령 항문성교를 비유하는 내용이 담긴 조선시대의 적벽가 또는 박타령, 남사당패의 미동(美童)치기에 대한 소문 등이 그것입니다. 당시의 동성애는 동성 간 성행위를 지칭하는 속어들 속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남성들끼리의 성행동은 남색(男色), 단수(斷袖), 계간(鷄姦), 비역, 미동(美童)치기, 용양, 면수, 분도(分桃)라고 하며, 여성들끼리의 성행동은 여색(女色), 밴대질, 대식(對食)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조선시대부터 1950년 때까지 한국사회에서는 동성애자라는 분류보다는 동성 간 성행위의 측면으로 동성애를 이해한 것으로 보입니다. 1960년대 도시화와 함께 동성애자 모임이 본격적으로 발전되었으며, 이후 극장이나 공원, 사우나 등에서 만남의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남성 동성애자의 경우에 한하며, 사회생활의 기회가 적었던 여성 동성애자의 경우는 이보다 훨씬 뒤인 1990년에 이르러 본격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1993년 한국 동성애자 역사상 최초의 공개적 모임인 ‘초동회’가 결성되었고, 1994년 초동회는 남성 동성애자 모임인 ‘친구사이’와 여성 동성애자 모임인 ‘끼리끼리’로 분리되었습니다. 그 후 각 대학가에서 동성애자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현재 다수의 동호회를 가지고 동성애자의 인권 신장을 위한 운동을 전개 중에 있으며, 이들에 대한 시선도 지성인들을 중심으로 점점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 현 사회의 분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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