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선진국

배재탁 | 입력 : 2026/06/01 [13:35]

 

 

대한민국은 많은 신기록을 가진 나라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 ‘식민지배를 받다가 선진국이 된 유일한 나라’(식민지배를 받다 지배국보다 더 잘살게 된 첫 나라 1인당 GDP 기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이 된 첫번째 나라, 타이틀이 참 많기도 하다.

 

자원 없는 작은 국토에 인구도 많지 않은 한국은, 어떻게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이 되었을까?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교육열과 풍부한 인적 자원, 수출주도형 경제정책, 산업 고도화, 강력한 정부의 주도와 신속한 실행력, 토지개혁 등이다.

 

많은 중진국과 후진국들은 한국을 모델로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꿈꾼다. 하지만 보기엔 쉬운데, 막상 하려니 안 된다.

 

왜 안될까?

 

우선 배가 불러서, 자원이 많아서이다.

한국은 아예 아무것도 없다 보니, 처음부터 외국으로 나가야 먹고 살 수 있었다.

하지만 필리핀, 아르헨티나, 브라질 같은 나라들은 자원과 농업 생산력이 풍부했다. 어떤 나라들은 땅만 파면 석유나 다이아몬드가 나오고 하니, 굳이 리스크를 감수하며 제조업이나 첨단 산업에 도전할 이유와 열정이 적었다. 하지만 원자재 가격이 폭락할 때마다 국가 경제 전체가 휘청이는 악순환이 반복되었고, 산업 경쟁력은 사라지며 1차 산업에 머물게 되었다.

 

가장 근본적인 것 중 하나는 국가 지도층과 관료의 부패다.

많은 개도국의 독재자나 특권층은 국가의 부와 원조 자금을 해외 비밀계좌로 빼돌리고 사치를 부렸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대기업에 특혜를 주는 대신 "글로벌 시장에서 성과(수출 실적)를 내라"는 조건을 걸었다. 정경유착의 대가로 얻은 자금도 철강, 조선, 전자 등 미래 산업을 위한 대규모 시설 투자로 재투입되며, 부패 속에서도 '생산 시설'이라는 국가적 자산은 남았다.

심지어 군부독재정권이 들어서도 수출 주도 경제 발전은 일관되게 밀었다.

 

또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196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은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수입을 막고 국산품을 쓰는 '수입대체 산업화'에 집중했다는 점이다. 이렇게 국내 시장이 보호되니 기업들은 기술을 개발할 필요 없이 안주했고, 결과적으로 글로벌 시장에선 경쟁력이 전무했다.

하지만 한국은 처음부터 미국, 유럽 등 가혹한 글로벌 시장에서, 세계 최고의 제품들과 직접 부딪히며 살아남아야 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위와 같이 열심히 잘했다라는 과정이외에도 중요한 요인이 있다. 바로 당시의 환경 즉 시운(時運)’이다. (운 즉 기회를 잡는 것도 능력이긴 하다)

 

한국이 한창 크던 1960~80년대에 중국은 마오쩌둥 체제 아래에서 문화대혁명 등을 겪으며 폐쇄적인 공산주의 경제 체제에 머물러 있었다.

만약 당시에 중국이 문화대혁명으로 역행하지 않고 엄청난 규모와 저임금 노동력으로 세계 시장에 진출했다면, 한국의 초기 경공업(섬유, 신발, 가발 등)과 중화학공업은 시작하기도 전에 무너졌을 것이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선언하고 본격적으로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한 것은 1990년대 이후였다. 한국은 약 30년의 시간 동안 기술을 축적했고, 중국이 본격적으로 치고 올라올 때쯤에는 이미 고부가가치 첨단 산업으로 한 단계 도망갈 수 있었다.

 

한편 미국과 유럽은 제자리 내지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1970~80년대 유럽과 미국은 인건비가 가파르게 오르고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철강 조선 화학 자동차 같은 중화학공업을 자국 내에서 유지하기 힘들어졌다. 나아가 먹고 살만 한 서구 노동자들은 거친 공장 일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서구 선진국들이 비워낸 제조업 자리를 한국이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포항제철을 짓고, 현대중공업이 조선소를 세운 타이밍이 바로 전 세계적으로 '제조업 공급 부족''공급망 다변화'가 일어나던 시점과 정확히 일치했다.

여기에 미국이 제공한 지정학적 특혜도 결정적이다. 미국은 아시아에서 공산주의 확장을 막기 위해 한국과 대만 같은 전초기지를 반드시 성공적인 자본주의 모델로 키워야 했다. 미국은 한국산 제품에 대해 관세를 낮추고 시장을 활짝 열면서, 한국 정부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수입 장벽을 치는 것은 묵인해 주었다. 냉전이 끝난 지금의 글로벌 무역 규정(WTO 체제 등) 하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특혜였다.

 

현재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꿈이라도 꾸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라질 같은 나라들은, 중국 인도 유럽 한국 일본 등을 제치거나 비슷해야 가능하다.

그런데 그 나라들에게 그런 수준의 기업이 하나라도 있거나, 최소한 생길 가능성이 높을까? 쫓아갈 만하면 남들은 이미 저 앞에 달아나 버리는 상황이다.

즉 이젠 과거의 한국처럼 하더라도 선진국이 될 수 없는 상황이란 의미다.

 

이렇게 한국은 주어진 기회()를 실력과 성실과 열정으로 잡으며, 지금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최후의 선진국이 될 수 있었다.

 

국운(國運) 역시 7, 3’인가 보다.

 

<한국인권신문 편집국장 배재탁 ybjy09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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