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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권신문=한민족역사정책연구소장 황청호] 콜로세움의 건축학적 구조에서 드러난 천부니즘
그리고 콜로세움은 79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숨질 무렵에는 3층까지 올라간다. 그러나 공사를 완성한 사람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아들인 티투스 황제였다. 티투스는 등극하기 전인 70년에 예루살렘과의 유대독립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고 10만 명의 포로를 데리고 귀환한다. 그리고 그중에서 4만 명의 포로를 동원하여, 드디어 콜로세움을 그의 아버지가 숨진 이듬해인 80년에 완공한다. 공사기간이 10년 정도가 걸렸으니, 당시 건축기술과 건물 크기를 고려한다면 이는 상당히 빨리 지은 셈이 될 것이다. 이어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동생인 도미티안 황제가 검투사, 동물 등이 이동할 수 있는 지하 공간인 히포지움을 추가한다. 당시 티투스 황제는 콜로세움의 완성을 기념해 100일 동안 축제를 벌였다고 한다. 그 당시 총독을 지내기도 했던 역사학자 디오 카시우스의 기록에 따르면, 이 100일 동안 진행된 콜로세움 개장 기념행사 때 희생된 동물만 무려 9천 마리를 넘었다고 한다. 그 후 240년 콜로세움에서 열린 축제 때 죽은 사람과 동물의 숫자를 적은 역사 기록들도 나타난다. 그 기록에 따르면 검투사 2천 명, 사자 70마리, 야생말 40마리, 코끼리 30마리, 표범 30마리, 기린 19마리, 하이에나 10마리, 호랑이 10마리, 물소와 코뿔소 각 1마리 등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로마 정치가들에게 있어서 콜로세움(Colosseum)은 검투사들끼리의 싸움이나 맹수들과의 싸움을 시민들에게 구경시킴으로써, 한편으로는 로마에 대한 일체감과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으로 건립된다. 또한, 이를 통해 로마나 귀족의 권위에 불복하는 세력들에게는 그 보복을 암시하는 공간이기도 하였다. 우리는 좀 더 이러한 콜로세움의 건축구조를 통해, 그 속에 숨어있는 문화적인 정신문화를 찾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건축구조물의 특성을 살펴보자.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살육의 투기장(鬪技場)인 콜로세움(Colosseum)을 살펴보면, 직경의 긴 쪽은 188m, 짧은 쪽은 156m, 둘레는 527m의 타원형이고, 내부공간의 넓이는 3357m², 그리고 외벽(外壁)의 높이는 52m의 4층으로 만들어져 있다. 1층은 높이 10.5m의 도리아식 반원주, 2층은 높이 11.85m의 이오니아식 기둥, 3층은 11.6m의 코린트식 기둥으로 되어 있고, 그리고 4층은 관중들이 작열하는 태양을 피할 수 있도록 벨라리움이라는 천막을 고정시키기 위한 장대 장치를 지탱하는 벽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외에도 계단과 독립 공간, 즉 갈레리아가 있다. 이 갈레리아(Galleria)는 이집트산 콩, 음료수 등을 파는 사람들의 휴식공간으로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서로 함께 조우했을 것이다. 그리고 경기장 바닥은 모래로 덮이고, 곳곳에는 사냥장의 분위기를 살려 나무와 구릉을 설치하였으며, 또한 바닥 밑에는 노예들과 맹수들을 수용하여 가두던 각종 우리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이처럼 콜로세움은 1층으로부터 도리스식(式)·2층의 이오니아식·3층의 코린트식의 원주(圓柱)가 아치를 끼고 늘어서 있다. 그리고 4층의 내부는 약 5만 명을 수용하는 계단식 관람석이 방사상(放射狀)으로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이 건물의 설계자가 과연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현재 알려지지 않고 있다. 도미치아누스의 건축가 라비리오라고 하기도 하고, 가운덴치오라는 사람이라고도 하는데, 단지 모두 다 추측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아무튼, 티투스 황제는 당시 이 장엄한 건축물을 통해 로마제국의 위용을 마음껏 자랑하고 싶어 했을 것이다. 우리들은 이러한 콜로세움의 건축구조물을 통해 몇 가지 특성을 찾아낼 수 있다.
첫째, 전체적인 건축구조 형식을 4층 타원형으로 하여 1층은 도리아식, 2층은 이오니아식, 3층은 코린트식으로 하고 4층은 관중들이 뜨거운 태양 빛을 피하도록 벨라리움 천막 형식으로 장식했다는 점이다. 둘째, 독립공간에는 갈레리아(Galleria)를 만들었으며, 약 5만 명을 수용하는 계단식 관람석은 반사상(放射狀)으로 설치했다는 것이다. 셋째, 건축물 설계자가 분명치 않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러한 콜로세움의 건축구조물의 특성을 통해, 당시 로마인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그 속마음을 좀 더 자세히 읽어낼 수 있다. 그들은 왜 콜로세움을 4층의 타원형으로 하여 각기 1층은 도리아식, 2층은 이오니아식, 3층은 코린트식, 그리고 4층은 벨라리움의 천막형식으로 만들었을까? 또한, 약 5만 명을 수용하는 계단식의 관람석은 왜 방사상(放射狀)으로 설치했으며, 더욱이 건축물 설계자는 왜 분명하지 않은 것일까? 우리들은 이제 이 점을 분명히 분석해보아야만 한다. 우리들이 이미 잘 알고 있듯이, 콜로세움은 로마문명이 나은 위대한 건축물이다. 하지만 문명이란 인류의 삶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다. 적어도 인류는 25만 년이라는 긴 삶의 역사를 살아왔다. 하지만 유럽문명이 만들어진 것은 6천 년에 지나지 않는다. 즉 문명(文明)은 인간의 삶보다도 그 수명이 짧으며, 절대로 인간의 수명을 앞설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미 아시아 동방의 문명은 유럽문명보다도 더 4천 년이나 앞선 1만 년 이상의 문명사를 가지고 있다. 바로 이 앞선 동방의 문명이 고대로부터 기원전 1세기경에 이르기까지 이란·그리스·인도·유럽 문명 등에 지대한 영향력 미쳤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문명의 주체는, 바로 다름 아닌 환인과 환웅으로 이어지는 환족(Hwans)의 문명임과 동시에 고대 동유럽에 있어서 게르만의 이주를 만들어내어, 로마문명을 무너뜨리는 데 있어서 강력한 영향을 미친 훈족(Huns)의 문명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콜로세움의 건축기법에 들어간 정신문화는, 이들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건축기법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고대 그리스의 건축양식인 도리아식·이오니아식·코린트식·벨라리움 등의 건축양식들이다. 문제는 이러한 콜로세움의 건축양식을 자세히 살펴보면, 고대 한민족이 가지고 있었던 천부니즘(Cheonbunism)의 건축기법이 복합적으로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천부니즘은 한민족의 위대한 정신문화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는 모든 우주 만물을 이루는 하늘·땅·사람을 다 함께 사랑하자는 것이다. 또한, 이 천부니즘의 건축기법에서는 하늘을 나타내는 원(圓. ◯), 땅을 나타내는 방(方. □), 사람을 나타내는 각(角. △)의 이치가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즉 원방각(圓方角)의 수리 기하학적인 이론을 말함이다. 이제 이를 콜로세움의 건축양식에 맞추어 그대로 적용해보자. 이 콜로세움(Colosseum)의 건축기법은 4층의 타원형으로 하여 각기 1층은 도리아식, 2층은 이오니아식, 3층은 코린트식, 그리고 4층은 벨라리움의 천막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여기서 1층의 도리아식(Dorian style)에 사용되는 기둥의 건축기법은 짧고 굵으며, 간결·웅장함을 나타내는 남성상이 드러나도록 방(方. □)형의 건축형식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2층의 이오니아식(Ionic order)에 사용되는 기둥의 건축기법에는 여성적인 경쾌함과 우아함이 잘 나타나도록, 기둥머리 부분에 전아한 소용돌이모양의 장식을 하며, 가는 기둥에 주초(柱礎)를 첨가한 원(圓. ◯)형의 건축형식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3층의 코린트식(Corinthian order)에 사용되는 기둥의 건축기법에는 이오니아양식보다 더 화려한 아름다운 아칸서스 나뭇잎 무늬의 기둥형상을 하고 있다. 바로 이 코린트식 건축기법은 아름다운 인간(角. △)을 형상화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관중이 않아 있는 계단의 4층은 방사상의 벨라리움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는 바로 인간의 의지가 밖으로 무한히 뻗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콜로세움은 천부니즘(Cheonbunism)의 이론에 의한 천지인(天地人)을 상징으로 하는, 원방각의 수리기하학의 원리에 따라 바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다시 해석하면 1층에 땅(地)을 만들고, 2층에 하늘(天)을 만들고, 3층에 인간(人)의 제국을 만들고, 그리고 4층에 그 인간의 제국이 무한히 번창해가는 것을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인간이 천지의 모든 역사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배는 곧 신(神)의 지배가 아닌, 바로 로마의 지배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로마의 강력한 지배문화는 바로 수많은 관중들이 작열하는 뜨거운 태양빛을 피할 수 있게끔 만든 관중석을 벨라리움의 천막형식으로 덮어 만들었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로마 궁전이나 교회문화에 나오는 폐쇄적인 권력의 탐욕성이 그대로 콜로세움에서도 같이 들어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콜로세움의 건축기법에는 천부니즘(Cheonbunism)에서 말하는 모든 인간들의 역사를, 바로 로마가 콜로세움 안에 폐쇄적으로 잡아 가두어 놓고, 그리고 그 안에서 그를 통제함으로써 자신들만의 새로운 지배문화를 온 세계에 형성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검투사들의 죽음으로 나타나고 광기에 미쳐버린 로마의 멸망으로 이어진다. 또한, 콜로세움의 전문적인 설계자가 없었다는 것은, 바로 당시의 사회적인 혼란상을 그대로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콜로세움의 건설에 있어서 네로· 베스파시아누스·티투스·도미티안 황제들로 이어지는 권력쟁취라는 추한 탐욕의 문화에서 그대로 다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전문설계자가 아닌 황제 자신들의 권력의지를 담아 직접 탐욕으로 미쳐버린 콜로세움을 건설한 것이다. 이는 콜로세움의 설계도를 직접 위에서 평면으로 펼쳐놓고 보면 그대로 모두 다 드러난다. 콜로세움을 놓고 위에서 아래로 평면도를 펼쳐보면 마치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계단을 이루며, 방사상으로 모든 것을 폐쇄적으로 가두고 있음을 그대로 볼 수 있다. 로마는 바로 로마제국이라는 거대한 우물(井)안에 모든 저항세력들을 가두어 두고, 그리고 이들의 모든 국권(國權)과 인권(人權)을 탄압한 것이다. 콜로세움! 이는 바로 거대한 로마문명의 웅비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방에서 고대로부터 전해져 오던 천부니즘(Cheonbunism)의 모든 역사관을 무너뜨리고, 그리고 그 모든 역사를 철저히 왜곡한 현장이기도 하다. <저작권자 ⓒ 한국인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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