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터뷰] 국내1호 여성 태권도 공인 9단 무도인 이미옥 교수

한국인권신문 | 입력 : 2019/07/08 [11:36]

 



[한국인권신문=조선영 기자]   

이미옥  1962년생

* 국내1회 여성9단. 2017.06.03 취득

* 현 국기원 품새 실기강사.6년차

* 현 대한민국 품새 상인심판 부위원장 및 심판11년차

* 제1회세계품새대회 챔피언. 국가대표 출신

* WTA국제 심판1급. 국내심판(품/겨)1급. WT세계국제심판(겨/품).

* 사범지도자1급. 경기아카대미2급. 생체태권도지도자3급.

* 부경대학교 일반대학원 체육학 석사졸업 * 현) 아시아퍼시픽대학교 태권도학과 교수

 

이미옥 교수는 타고난 여성 무도인이다. 여성 태권도라는 개념이 없을 때부터 집안의 반대와 가난을 딛고 태권도를 시작하고 수련해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 태권도를 하느라 결혼도 포기했다. 첫인상에도 운동복 같은 옷차림에 무도인의 느낌이 확 온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전혀 가꾸지 않아서 그렇지 미인형이다. 묘한 매력을 가진 이미옥 교수를 만났다.

 

Q: 태권도를 시작한 동기는? A: 운동에 탁월한 소질이 있어 초등학교 시절 육상 중·단거리 대표로 뛰었지만 가난으로 부모님의 협조가 없었다. 학교대표로 뽑혔는데 출발호출에 나의 이름을 불러서 출발선상에 나갔지만 코치는 내 이름에 다른 선수를 교체하였고, 뛰어 보지도 못한 경기를 내가 뛰어서 부산대표선발에 탈락한 것으로 지시를 내렸다. 어린 시절 지울 수 없는 기억과 분노 속에서, 힘없고 가난한 여자 아이라서 말조차 못하고 숨죽이며 가족들 몰래 태권도를 시작했다. 박진감 넘치고 날렵한 몸놀림과 우렁찬 기압소리, 마치 무술영화처럼 태권도를 배우고 싶었다.

 

Q: 집안에서 지원을 안 해 주셨나? A: 조신하고 곧은 여자처럼 자라기를 바라는 부모 형제들의 엄격함에... 대한민국에서 가난에 허덕이는 남자아이도 아닌 여자아이가 태권도를 선택해서, 집에서의 지원은 상상도 못했다.

 

Q: 태권도를 배우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A: 어려서 최선을 다해 수련을 하는 과정에 관장님이 바뀌었다. 그 동안 관장님께서 내 사정을 딱히 여겨 모든 부분을 무상으로 도와 주셨고, 요기를 제대로 못하고 오는 날엔 맛난 통닭도 체력보강 하라시면 싸 주시며 금전적인 부분은 부담을 전혀 주시지 않으셨다. 새로운 사범님은 이러한 상황을 전혀 모르시고 개인 시합 출전료와 서울까지 경비도 가져오라고 하셨다. 시합이 너무 뛰고 싶으니 도와 달라 사정을 했지만 단칼에 거절 되면서 나의 꿈과 희망은 없어졌다.

 

Q: 여성이기 때문에 힘든 점은 없었나? A: 여자선수가 없어 성별 구분을 할 수 없던 시절, 여자라서 시합에 어려운 난관 많았다. 또한 기장시골에서 부산중심가로 사범 자리를 옮겼는데, 여자사범 밑에서 수련생을 맡길 수 없다고 수련생을 데리고 나갈 때 나는 결심했다. 이제부터 “여자 이미옥은 없다”라고. 그리고 어느 누구보다 강한 스파르타식 체력훈련과 지독한 트레이닝, 그리고 공격적 발차기와 겨루기 지도법로 승부를 걸었다. 결국 수련생이 200~300명으로 늘어났다. 한편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느끼는 태권도 활동에서 내가 굴하지 않는 대쪽 같은 성향이 있어서, 야망과 욕심이 있는 남자 사범들의 적이 되는 경우를 알면서도 정당한 진행을 하며 힘들 곤 했다. 여자지도자로서 동등한 대우는커녕 늘 도마 위에서 난도질당했다.

 

Q: 지금까지 태권도를 해오면서 가장 기억나는 순간은? A: 2000년도에 대퇴골수암 판정을 받았다. 두려움도 겸허히 즐기며 받아들이고 대수술을 선택했다. 2005년 대한태권도협회로부터 품새심판으로 임명 받으며 품새의 규정과 세계품새대회가 있음을 알고, 못다 이룬 태극마크를 달기 위해 심판 활동하면서 틈틈이 서울을 오르내리면서 연습을 했다. 마침내 국가대표선발전 개인전1위로 입상하여 제1회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에 참가해 꿈을 현실로 이루는 쾌거를 이루었다. 저혈당으로 체력이 고갈되어 결승전 경기2라운드의 경기를 해낼 힘이 나오지 않아서 힘들다고 감독님께 말씀드렸지만, 끝까지 버티고 최선을 다하라시며 격려해 주셨다. 무대에 올라 천당과 지옥문을 보면서 판정이 끝나고서야, 참았던 힘겨움에 무대아래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건강한 재도전은 계속 강행되었지만, 나의 관절은 심하게 손상되어 결국 2010년 선수생활을 접었다.

 

Q: 국내1호 여성 태권도 공인 9단인데 기분이 어땠나? A: 9단은 그동안 수련과정을 차곡차곡 승단에 실력을 인정받고, 승단마다 정해진 기간과 정해진 태권도 실력과 자질 논문 면접을 겸한 인품까지 갖추면 된다. 45년 한결같이 꾸준한 태권도 수련으로 2017년 6월 3일 국내1호 여성 9단의 입신이라는 경지에 입문했다. 동료와 후배들로부터 영광스러운 9단의 축하를 받을 때는 체육훈장을 받을 때 보다 더 뭉클함과 무언가 채운 듯 비워지는 듯, 묘한 씁쓸하고 외로움 감정들을 표현할 수 없었다. 깊고 어두운 무게감에서 빠져나가는 허전함과 공허함들이 함께 밀려왔다. 여성 국내1호 태권도 9단은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힘든 과정을 실현해 낸 과정을 모두 마친 결과물 같다.

 

Q: 아태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계획이나 각오는? A: 나는 국기원 품새실기강사 도전을 목표로 하며, 몸 쓰임을 가장 간단하게 쉬운지도 방법을 연구해 왔다. 아태대학의 학생들에게는 현장에서 필요한 경험과 도전할 수 있는 자신감 그리고 태권도 동작쓰임을 가장 쉬운 방법으로 즐겁게 가르칠 생각이다.

 

Q: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는? A: 현장에서 매일같이 횐 도복을 입고 수련하는 지도자 역할은 비록 못하지만 태권도에 대한 열정과 지금까지 쌓아온 태권도 지식과 경험들을 토대로, 건강이 허락해 주는 한 강사나 심판으로서 현장에서 활동하며 태권도의 발전에 기여하는 생동감 있는 태권도 무도인으로 남고 싶다.

 

조선영 기자 ghfhd362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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