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을 끌던 여고들
필자가 고등학교 다닐 때엔 남녀 공학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남학생들은 자연히 여고와 여학생들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서울에 있는 여고들 중 3대 발광과 5대 극성이라고 부르는 여학교들이 있었다. 껌 좀 씹거나 침 좀 뱉던 여학생들이 다닌다고 했던 학교들이다. 남학생들도 피해간다는 3대 발광(염광 은광 신광)과 꽤나 극성스럽다는 5대 극성(덕성 계성 명성 한성 보성)이 그들이다. 그런데 이는 어디까지나 뺑뺑이(고교 평준화) 이전의 전통과 이미지로 만들어진 단어들이다. 공부에 관심이 적었던 여학생들이 다니던 학교였다. 하지만 그 별명들은 이후에도 이어지며 농담처럼 불렀다.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여성들이 고등학교 다니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비싼 등록금 내면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자유분방 내지 인상 좀 쓰면서 학교 다니던 여학생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참 궁금하다. (물론 일부 학생들 얘기다) 한편 공부는 잘 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운 여학생들은 상고로 진학을 했다. 특히 서울여상 같은 경우는 반에서 1~2등 정도 해야 갈 수 있었고, 졸업하면 100% 은행처럼 좋은 직장에 취업했다. 그 학생들은 웬만한 대학 졸업자만큼 우대받았고 평판도 좋았다.
뺑뺑이(고교 평준화) 이후 여학생들은 교복으로 구별이 되었다. 다수의 학교가 경기여고 같이 전형적인 여고 교복을 채택했다.(사진) 하지만 좀 변화된 교복으로 남학생들의 관심과 눈길을 사로잡던 학교도 있었다. 대표적인 학교가 덕성여고다. 소위 항아리치마(타이트 스커트)를 입어 섹시하고 여성스러운 모습이었다. 특히 덕성여고 야간은 극성 이미지가 더해져, 꽤나 거칠었다는 소문이다. 리본을 했던 서문여고나 터틀넥 스웨터를 입었던 보성여고 등도 좋은 점수(?)를 얻었다. 빵떡모자(고바우모자)를 쓰던(핀으로 꽂고 다니던) 창덕여고 같은 경우는 귀엽다거나 웃긴다는 식의 호불호가 갈렸다. 하지만 진명여고처럼 벨트까지 하던 교복은 별로 인기가 없었다.
정작 여학생 당사자들은 별 관심이 없는데, 괜히 할 일 없는 남학생들끼리 모여 어쩌고저쩌고 따지며 점수를 매기곤 했다. 별 것도 아닌데, 다양성이 없던 시절이라 그랬던 모양이다. 참 철없는 행동이었지만, 당시엔 낭만처럼 생각했다.
<한국인권신문 편집국장 배재탁 ybjy0906@naver.com> <저작권자 ⓒ 한국인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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